1. 줄거리
영화는 비교적 최근인 2024년 7월 3일에 개봉한 한국 영화로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연출했던 이종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배경은 휴전선 인근 북한 최전방 군부대로, 10년 만기 제대를 앞두고 있는 중사 규남은 하나뿐인 가족인 어머니가 최근에 사망하여 제대 후에 고향에 돌아가도 반겨 줄 사람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는 어릴 적 읽었던 노르웨이 출신 탐험가 로알 아문센의 전기를 항상 소지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 꾸었던 탐험가라는 꿈을 아직도 품고 있는지 영화에서 따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는 꿈을 선택할 자유가 없는 북한 사회에 염증을 느끼고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철책 밖 비무장지대에 깔린 지뢰의 위치를 기록하고 사람들이 잠에 깨기 전 부대로 복귀하며 남몰래 탈북을 계획합니다.
그런데 규남의 부대에 함께 복무하고 있는 하급 병사 동혁이 규남의 은밀한 계획을 눈치챕니다. 동혁은 먼저 탈북한 어머니와 동생을 그리워하고 있으며 규남에게 비가 와서 기록해 둔 지뢰의 위치가 바뀌기 전에 자신도 함께 남한에 데려가달라고 매달립니다. 규남은 이런 동혁의 부탁을 거절하며 자신은 탈주를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애써 부인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이 급해진 동혁이 돌연 규남의 노트를 가지고 혼자 탈주를 하려고 하는데 이를 말리려는 규남까지 함께 탈주병으로 체포됩니다.
탈주병 조사를 위해 부대로 온 보위부 소좌 현상은 두 탈주병을 총살해야 한다고 말하는 소위에게 규남이 탈주를 시도했다는 증거는 없으며 오히려 동혁이 탈주를 시도하자 이를 체포하려고 했던 노력 영웅이라며 위원회를 마무리하고, 규남에게 사단장 직속 보좌자리까지 마련해 줍니다. 알고 보니 현상은 집안 운전기사의 아들이었던 규남과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로, 영화에서는 자신의 실적을 위해 규남을 영웅으로 둔갑시키는 것으로 나오지만, 사실은 규남을 꽤나 아껴왔던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규남이 본격적인 탈출을 감행하자 현상은 끝까지 규남을 추격합니다.
2. 재미있는 포인트
1) 규남이 야간 근무를 할 때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청취하는데, 북한과는 너무 대조되는 대한민국의 실정을 듣게 되며 탈북에 대한 꿈이 커집니다. 규남은 탈주 과정에서 나침반이 깨지자 자신이 야간 근무 시 사용했던 라디오 수신기가 작동하는 방향으로 질주합니다.
2) 배우 송강이 선우민이라는 역할로 특별 출연하는데 과거 러시아 유학 시절에 현상과 동성 연인 사이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에서는 동성애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현상은 그를 휴대전화에 러시아어로 '내가 사랑했던 개자식'이라고 저장해 놓았습니다.
3) 장면 중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라는 선전 입간판이 있는데, 간판의 '행복' 부분에 운전 중 격전이 벌어지고 있던 차가 돌진해 박살 납니다. 피아노를 연주하고 춤을 추며 파티를 즐기는 상류층과 대비되는 북한 서민들의 현실을 생각해 보면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 현상이 지휘하던 군부대의 사격으로 간판이 모두 박살 난 뒤에는 '자유를(을) 위하여'라는 문장만 절묘하게 남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 제42회 청룡 영화상에서 신인감독의 시상자로 단상에 오른 이제훈이 '자신이 만약 영화감독이라면 본인의 영화에 출연해줬으면 하는 배우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출연보다는 함께 연기하고 싶은 배우가 있다고 대답하며 객석에 있는 구교환 배우를 언급합니다. 수줍게 손하트를 날린 두 배우가 이 영화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5) 이 영화의 초반부와 후반부에는 자이언티의 '양화대교'가 흘러나옵니다. 가사의 후렴은 '행복하자 우리, 아프지 말고'입니다. 소소한 일상을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철책을 넘었던 두 탈주병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3. 총평
영화를 다 보게 되면 포스터에 그려진 내일을 향해 질주하는 규남과 오늘을 위해 추격하는 현상의 모습이 슬프게 보입니다. 규남은 자신의 어렸을 적 꿈 때문인지 탈주에 오랜 시간 공을 들여왔지만, 사실상 주인공인 규남보다 더 입체적인 서사를 가지고 있다고 느껴지는 인물이 현상입니다. 고위층에 속해있지만 북한 사회 안에서는 꿈을 꿀 수 없고 원하는 대로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현상은 규남의 모습을 보며, 그리고 목숨을 걸고 쫓으며 많은 것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꿈을 깨고 싶기도 하지만 죽일 수는 없는 그런 존재이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규남은 자신을 잡으러 비무장지대까지 넘어온 현상에게 당돌하게도 '나는 마음껏 실패하러 가는 겁니다.'라고 말합니다. 자유 없는 안전한 길 보다 자신이 정한 길을 가겠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현상은 마음으로 그 말을 조금 수긍했을까 궁금해집니다.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라기보단 적당히 시간 보내기 좋은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중간중간 저런 건 왜 나왔을까 싶은 장면도, 뻔한 장면도 있지만 사소한 문제들이어서 넘어가도 괜찮을만합니다. 영화의 내용이 북한군을 시점으로 전개된다는 것도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 보물 같은 구교환! 언제나 뻔하지 않은 연기로 덩어리 진 영화에 감초 같은 섬세함을 더해줍니다. 재미있는 추격극을 보고 싶다면 <탈주> 추천합니다.